가온 칼럼 

안젤라 선생님께

 

안젤라 미스투라 (한국명 안재란)선생님은

제삶에 큰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이시고,

또한 부모님만큼이나 저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던 선생님이십니다.

 

193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생하신 안젤라 선생님은

평신도 선교회인 국제 가톨릭 형제회(AFI) 회원으로서

노기남 대주교의 초청으로 1956년 한국에 오시게 되어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오셨습니다.

 

안젤라 선생님의 제자인 저는

2001년 스승의 날이 되어

선생님께 무슨 선물을 드릴까 궁리하다가

선생님의 삶을 제가 아는 분들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대 연극회의 홈페이지에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싣고는,

안젤라 선생님께도 같은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안젤라 선생님의 아름다운 삶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안젤라 선생님께 대한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국민에게 해주신 모든 것에 비하면

저의 얘기는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하잖은 것이죠.

 

일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온 올림.

 

*************************

 

 

 

 

안젤라 선생님께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5월의 장미보다도

환한 미소로 제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선생님.

 

저에게 이태리어보다도 더큰 가르침

- 삶의 길을 깨닫게 해주신 안젤라 선생님.

 

선생님께 어떤 말로 제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전 선생님께 이태리어를 배우고 있었지만

1981년 대학4학년이 되던 해,

우연히 선생님과 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기 전까지는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저 선생님의 수업만 듣고 있었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죠.

 

대학 4학년 때, 전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해 여름방학 명동성당 청년연합회에서 주최한

나환자촌 봉사활동에 참가하였다가

함께 봉사에 참여한 한 아가씨를 알게 되어 사귀고 있었죠.

 

그 아가씨는 진심으로 저를 사랑하고 있었고

저와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전 그 아가씨와 결혼할 만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에 대해 확답을 피하는 저에게

그녀는 "나를 사랑해?" 하고 물어왔고 그럴 때마다

전 그녀가 상처 받을까봐 진심을 숨긴 채

"" 하고 대답을 하였지만

청혼을 거절하지 못해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저를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고 졸라대었고

내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저는 스스로 만든 덫에 빠져

해결할 길을 못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정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마주치게 되었죠.

 

선생님은 저에게 이태리어로 반갑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셨죠.

보통 때 같으면 회화의 공식대로

"잘 지냅니다. 선생님도 잘 계시죠?" 하고 답변하고 끝나는데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저는 무심결에

"별로 잘 지내지 못해요." 하고 답변해 놓고는 이내 후회하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물으셨었죠.

저는 후회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선생님이 외국인이시니까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

제 문제에 혹시 도움을 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죠.

 

선생님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저의 고민을 들으시더니

그녀가 상처받을까봐 진심을 얘기 못하는 제 마음을 이해하신다면서

"그렇지만 그녀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라이몬도(저의 세례명)가 진심을 얘기하는 것이에요.

라이몬도가 정말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그녀가 잘 받아들이고 오히려

고맙다고 할 거예요. 어떤 여성이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려 들지는 않을 거에요. 그러므로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녀를 도와주는 것이에요." 하고 말씀해 주셨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동안의 짙은 먹구름이 일순간에

개이면서 마음이 밝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에게 저의 진심을 편지로 썼습니다 .

"난 너의 청혼을 받고 그동안 무척 괴로웠다.

나를 결혼 상대로 택한 것은 고맙지만

너와 결혼할 만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난 네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너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선생님 말씀처럼 그녀도 진심으로

제 얘기를 받아들이고 "어려운 얘기를 솔직하게 해주어서 고맙다"

답변이 왔었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선생님은 그다음에 저를 만나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고 물으셨고

선생님과 저와의 내면의 만남은 시작되었죠.

 

***

 

대학교 4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면서

동급생과 후배들과 함께 이태리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선생님이 계신 명동의 "전진상회관"에서

이태리어로 된 "갈매기의 꿈"을 배우고 있었죠.

 

비상을 꿈꾸며 속도를 높여가던 조나단이 갖은 노력 끝에

신기록을 세운 기쁨을 표현하면서 곧이어

"그러나 그 승리는 순간적인 것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오자 선생님은,

"여러분은 승리가 순간적이길 원해요? 아니면

영원하길 원해요?" 하고 물으셨죠.

 

저희들은 마치 제비들처럼 입을 모아

"영원하길 원해요!" 하고 답변하였죠.

 

그러자 선생님은,

"전 순간적이라고 한 이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왜냐하면 순간적이었기 때문에 조나단은 또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질 수 있었고 더 나은 목표로 향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 상태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발전이 없었을 거에요."

하고 말씀해 주셨죠.

 

***

 

겨울방학은 지리했고 더욱이 일주일에 한번씩

명동에 들러 이태리어를 공부하는 것도 그렇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우리 스터디 팀이 모두 꾀가 나서

"선생님,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모두 게임이나 하면서 노는게 어때요?"

하고 제안을 하자

선생님께서는 얼른 받아들이시고

"그래요. 우리 무슨 게임할까요?"

하고 물으셨죠.

 

우리 팀은 막상 놀자고는 하였지만

아무런 제안을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럼 우리 젓가락 부러뜨리기를 할까"

하고는 나무젓가락과 명함을 가지고 나오셨죠.

 

"한 사람은 젓가락을 꽉 붙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명함을 세워서 나무 젓가락을 내려치는데

종이 명함이 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릴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시고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불러서는

시범을 보이게 하셨죠.

 

놀랍게도 종이 명함은

세벌이나 되는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불가능하다고 했던 대부분의 사람은 물론

가능하다고 했던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놀라게 하였죠.

 

선생님께서는 게임을 끝내고서는

"이 게임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얘기해 볼까요"

하고는 모두가 한마디씩 느낀점을 이야기 하도록 하셨죠.

 

전 선생님의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게임 시간마저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젓가락 부러뜨리기 게임을 끝내면서

선생님께서는 전진상교육관에서

이런 게임을 통한 교육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신청을 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셨죠.

 

****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우리 스터디 팀은 선생님을 모시고

도봉산 등산을 하였죠.

 

모두가 발밑을 쳐다보면서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데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우리를 불러 세우시며

하늘을 날고 있던 새를 보라고 하신 뒤

커다란 바위를 보라고 하시면서

뭐 느끼는게 없느냐고 하시더군요.

 

모두들 "없는데요." 하니까

"바위는 저렇게 육중하고 커다란데 자기힘으로는 꼼짝도 못하고

새는 저처럼 작고 연약한데 마음껏 자유롭게 날아다닌다"고 하셨어요.

 

그러자 누군가 "선생님도 사춘기 소녀처럼..." 하였고

이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죠.

 

전 일행의 맨 뒤를 따라 걸으면서

평범한 사물 하나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선생님이

놀랍기까지 하였어요.

 

****

 

겨울방학이 끝날무렵 전 선생님을 찾아가

젓가락부러뜨리기 게임을 끝내시면서 안내하신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저의 수강료를 선생님이 대신 내어주셨죠.

 

이 프로그램(심성계발프로그램)은 저에게 한마디로 충격

그자체였죠.

 

물론 반수 가량은 심드렁하였지만

반수 가량은 이 프로그램으로

삶의 자세가 뒤바뀌는 커다란 계기를 갖게 되었죠.

연세가 쉰이 넘으신 한 여성 교감님은

자신이 이제껏 교육을 잘못 받아왔다면서 울먹이기까지 하셨죠.

 

저도 이러한 계기를 갖게 된 사람 중의 하나였죠.

선생님은 이 프로그램에 "Helper"로서 참가하고 계셨는데

저의 문제점을 알고 계시고는 단 한마디의 화두로

평생을 돌이켜보며 살아야 할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온돌방에서 이루어지던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치우기를 좋아하는 저는 습관적으로 방석을 모아서

한쪽 구석에 치우고 있었죠.

 

그때도 방석을 여러장 쌓아 올린 채 양팔로 안고 나르려 하는데

프로그램 참가자 중 누군가가 제에게

"제가 거들어드릴까요?" 하고 제안을 하더군요.

 

"괜찮아요." 하고 제가 그냥 지나치려 하자

누군가 제 어깨를 잡아당기더군요.

 

뒤돌아 보니까 바로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께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시면서

"라이몬도, 혼자 하지 말고 함께 나눠 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하셨죠.

 

전 마치 비밀이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 올랐습니다.

그 순간 저의 병이 어디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에요.

옳고 좋은 일이면 같이 해야하는데

전 혼자서 해버리는 병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하는 오만함,

그리고는 다른 사람을 제 기준에 맞추어 이리저리 재단을 해버리는 병을.

 

저는 독선(獨善)이 왜 홀로 ""자에 선할 ""자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온돌방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제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죠.

저는 정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전 제 나이를 헤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가 1982년이니까 이제 제 나이 스무살이 된 셈이죠.

 

*****

 

선생님은 다시 태어난 제게 "떼제공동체"를 알려주시고

속함(belonging)의 기쁨을 캐는 "선택 프로그램"도 소개해 주셨죠.

 

선생님을 통해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저의 이 21년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요.

 

천성이 게으른 저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먼저

편지를 보내어 저의 안부를 물으셔서 제가 몸둘바 모르게 하셨고,

제가 루치아를 만났던 행복한 순간이나

저희 부부가 둘째아이를 저 세상에 보내 하늘이 꺼지는

슬픔 속에 있을 때도 함께 해주셨죠.

 

***

 

선생님께서는

교수라는 신분에도,

수도물이 하루 두시간 밖에 나오지 않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신림동 달동네로 이사를 가셔서

행복은 현실적인 조건을 뛰어넘어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죠.

 

팔을 뻗으면 사방 벽이 닿는 조그만 방을

헌 사과 궤짝을 도배하여 책꽂이로 쓰는 등 너무나 예쁘게 꾸며 놓으셔서

선생님집을 찾는 사람들마다 감탄하게 만드시기도 하셨죠.

지금도 제 딸은 앞 골목에 꽃을 가득 피워놓은 선생님댁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집으로 알고 있답니다.

 

모두가 동네를 떠나고만 싶어하던 주민들에게

선생님의 삶은 그 자체로 커다란 도전이었죠.

 

****

 

제가 태어나던1956,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오셔서

선생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민들레처럼 숱한 사랑과 희망의 씨를 뿌리셨는지요.

 

제가 여기서 고백한 몇몇 일화들은

선생님께서 제 가슴속에 심어준 수많은 사랑의 씨앗 중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씨앗이 얼마나 제 인생에 소중한 것인지

말씀드리기 위해 부끄럽게 꺼내 놓는 것이에요.

 

****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든,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선생님께 모두 돌려드리지는 못해도

선생님께서 심어준 씨앗이 저를 통해

누군가에게 건너가 또 백배 천배로

씨앗을 퍼뜨려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어요.

 

선생님,

얼마전에 선생님의 병환에 무척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히 건강을 되찾아

예전처럼 환한 미소를 보게 되어서 너무나 기뻐요.

 

올해 스승의 날에

특히 선생님의 건강을 위해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요.

 

 

 

제자 고재섭 올림.

 

 

<<가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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