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칼럼 

내 캐비넷에 해골이

-이번에 대학문을 들어선 새내기들에게-

 

 

지금은 멕시코에 계십니다만

제 은사님이신 안젤라 선생님 외에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 또 한 분 계십니다.

알폰소 위머 수사님이시죠.

짧다막한 키에, 백설공주와 난장이에 나오는

난장이처럼 동안에다 늘 웃음을 머금고 계시며

외대에서 오랫동안 스페인어를 가르치기도 하셨으니까

외연회 회원 중에는 그분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전 대학 시절에

인격이란 해가 갈수록 성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안의 단점은 점점더 보완되고

장점은 늘어나면서

20대보다는 30대에, 30대보다는 40대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알폰소 위머 수사님으로부터

합정동의 마리스타수도원에서 영어성경을 배웠는데,

알폰소 수사님은 연세가 그리 많으셨음에도 불구하고(당시에 일흔이 가까우셨죠)

늘 소년처럼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으시면서

저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지향하는 삶과 신앙과 실생활이 너무 잘 일치하고 있어서

그분을 뵙는 것만으로도 흐뭇하였습니다.

제가 신앙을 가진 것도 이분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전 알폰소 수사님을 보면서 늘

수사님은 오랜 수도생활을 하셔서

마음속에 그늘이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죠.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하루는 수사님께

"수사님, 저는 수사님을 뵐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삶과 신앙이 잘 일치하는지

참 부러워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수사님께서는 얼굴이 빨개지시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안에는 해골이 많아요.

사람들이 볼까봐 몰래 캐비넷에 숨겨두고 있지만

캐비넷을 열면 해골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실은, 감추고 싶은 해골이 더욱 많아져요."

 

수사님의 그 솔직한 말씀에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나이와 인격적인 완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러던 20대를 지내고

30대를 정신없이 보내고 40대도 이제 끝물이 되어가는 지금에 있어선,

나이와 인격이란 오히려 반비례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두려움 없던 청년시절에도 제대로 살기 힘든데

식솔까지 달린 몸이야 어찌 올바름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리 타협하고 저리 타협하며 살아가다보니

새삼 알폰소 수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 안에

해골의 수를 늘리는 것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카들에 이어서 이제는 친구의 자녀들도 대학문을 들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시절 제가 몸 담았던 외대연극회에도 새내기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하나하나 손을 붙잡고

“큰 꿈을 지니고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함이 없이

마음껏 용기있게 젊음을 살아보라."고 축원하고 싶습니다. 

가장 힘이 있고 용기 있는 시절이 젊은 시절이고

이 시절에 그리 살지 못하면 나머지 인생에서

그리 살기란 거의 힘들기 때문이니까요.

 

대학생활, 인생의 황금기에 들어선 새내기들에게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온 올림.

 

 

<<가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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