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칼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스톱 유감

 

2000년 연말에 개최된 이태리어과 총동문회 총회에서

은사이신 이성훈 교수님께서

회의 도중에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20년 전 쯤에 교수님이

제자들의 졸업 여행에 동행을 하여

화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제자의

돈을 따간게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제자는,당신이 고스톱을 할 줄 모른다고

배려하여 민화투를 하자고 하였는데

그렇게 배려해준 제자의 돈을 따버려

더욱 민망하였다는 것이다.

 

제자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못하고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놓고 있다가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바로 그 제자라면서 나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물론 좌중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으나

본인인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은사님의 솔직한 고백이 고마워

"제가 그랬었나요?" 하고는

"그랬을 거예요. 저는 화투만 하면 잃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하고 웃었다.

 

사실, 난 화투만 하면 잃는다.

화투하면 주로 고스톱인데

직장 다닐 때는 상가에 갈 때 또는

집들이 할 때 종종 고스톱을 쳤다.

처가에서도 자주 고스톱을 쳤는데

따는 적은 거의 없다.

 

별로 도박을 좋아하지 않아서

돈을 따고 있을 때도 미안하고 불안해서

어떻게 잃을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스톱과 사이가 좋지 않다보니

고스톱이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고스톱이 국민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포커와 비교를 해본다.

(그렇다고 포커가 낫다고 추켜 올리는 것은 아니다)

 

첫째, 고스톱은 잔인하게도 죽을 권리가 없다.

포커는 패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도중에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고스톱은 일단 시작하면

가진자(점수를 얻은 자)가 생사여탈의 전권을 쥔다.

그가 ""하면 내패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두말없이 끌려가야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힘있고 돈 있는 사람 위주로 이끌어 가는 우리나라

정책을 엿보는 것 같다.

오죽하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둘째, 고스톱은 싹쓸이 문화다.

싹쓸이를 잘하면 64배까지(맞나?) 벌 수 있다.

싹쓸이를 위해서 피박, 멍박, 광박, 흔들기,

쓰리고, 5광 등 규칙을 막만들어 내고

싹쓸이가 쉽도록 규칙을 자주 바꾼다.

어느 틈엔가 요상한 조커까지 끼어들더니

하나도 모자라 둘 셋 되어

며칠전에는 조커가 4장이나 끼어든 화투도 보았다.

포커는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따는 것은 배팅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배팅에 끼어들지 않은 사람의 것까지 싹쓸이할 수는 없다.

우리 경제의 문어발식 경영이 어딘가 싹쓸이를 즐기는

고스톱과 닮지 않았는가?

어장에서도 치어를 잡아 씨를 말리는 판이니

싹쓸이 문화에는 너나가 없나 보다.

 

셋째, 고스톱은 규칙을 자주 바꾼다.

고스톱은 규칙이 너무나도 자주 바뀌어

시합 전에 참가자 간에 규칙 통일을 해야 한다.

포커가 거의 세계 공통적인 룰을 갖고 있음에 비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하긴 헌법도 자주 바꾸는 판이니 고스톱 규칙쯤이야

못바꿀 이유가 없다.

"전두환 고스톱" "장영자 고스톱" "삼풍 고스톱"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규칙을 바꾸는데,

이러한 규칙 개정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규칙 개정의 이면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 같다.

모두 싹쓸이를 돕는 쪽으로 개정이 되는 것이다.

 

넷째, 양심적인 게임 운영이 안된다.

포커에서는 전문 도박꾼들이나 비양심적인 운영을 한다.

그러나 고스톱에서는 양심을 속이는 일이 허다하다.

멍박 피박 등을 당하면

이긴자가 지적하지 않아도 신고를 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순진하게 화투를 치면

곧장 핀잔을 당한다.

내가 박을 당했다는 사실이나 상대방이 쓰리고 했다는 것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

상대방이 깜박 잊고 지적을 하지 않아

다음판으로 넘어가면 추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커와 달리 전문 도박꾼이 아닌 사람도

예사로 자신의 양심을 속이며

게임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도덕적 해이도 이러한 고스톱의 비양심적 게임 운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난 우리 아이에게도 지적인 오락 한 가지 쯤은 가르치고 싶다.

하지만 고스톱은 좀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주위에 보고 배우는 것이 고스톱이니

모른 채 넘어가라고만 할 수도 없다.

다만 고스톱을 꼭 배우려면,

고스톱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너무 빠지지는 말고 배우라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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